방망이 깎던...아니 우표 떼던 노인!
네이버 첫 화면의 뉴스란에서 아름다운 그림 한 장이 휙ㅡ하고 스쳐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무엇이었을까 궁금해서 다시 돌려봤더니 우리 우표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표로 선정되었다는 헤드라인과 그 주인공인 우표의 사진이었다. 기사 제목에 낚였다 싶었다.
'우리 우표가'라고 표현을 하면 '우리나라의 모든 우표'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가? 하지만 그럴리가 없다. 헤드라인은 눈길을 끌기 위해서 저렇게 작성했지만 결국엔 우리나라 우표 중 어느 하나가 아름다운 우표를 뽑는 그런 대회에서 1등으로 선발되었다는 그런 내용일 것이다.
그랬는데 사진이 눈에 들어오니까 어쩔 수가 없었다. 어떤 우표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국은 나도 헤드라인에 낚이고 만 물고기 중 하나인 것인가?
이 우표는 '어린이 인권보호 특별우표'로 2007 세계 우표 디자인 공모대회 일반부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노혜림씨의 작품이다. 심사위원단은 심사평을 통해 “어른에 의해 보호되고 있는 아이의 이미지가 인류의 평등과 평화를 공유하기 위한 이상적인 목표가 될 수 있음을 일깨워줬다”며 우정사업본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래서 '우표 참 예쁘다'는 생각을 하면서 예전에 우표를 수집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런데 나랑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기사에 달려 있는 댓글에 우표 수집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담은 것 같은 제목이 눈에 띄었던 것.
제목은 바로 '패러디 수필 - 우표 떼던 노인(상/하)'이었다. 처음엔 무슨 수필을 패러디 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상/하편으로 나눌 정도면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기도 해서 클릭해서 읽게 되었다.
덕분에 오랜만에 감동의 수필을 마주하게 되었다. 수능 때문이기는 했지만 언어영역을 공부할 때 좋은 문학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좋았던 것 같다. 지금은 유명하고 알려진 '명작'이라고 하면 오히려 손이 더 안 간다. 우스갯 소리지만 명작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와는 다른 정의가 하나 있다.
명작은 유명해서 책 이름은 다들 알지만 정작 읽다가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읽기를 포기하게 만드는 책이라던가 뭐라던가. 그런 뉘앙스의 유머였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재밌는 패러디 수필 감상 한 번 해보시라. 우표수집을 취미로 했던 사람이라면 정말 공감이 가는 내용일 것이다. 아련한 그 시절의 향수가 떠오른다. 내 보물 1호였던 우표수집책...
--------------------------------------------------(패러디 수필 - '우표 떼던 노인' 전문)
우표 떼던 노인
벌써 5년 전이다. 아들놈이 외국 사용제 우표에 맛들인지 얼마 안 돼서 회현지하상가를 헤메며 돌아다닐 때다. 심우장(尋牛莊)을 왔다가는 길에, 집으로 가기 위해 삼선교(한성대입구)역에서 일단 지하철 4호선을 타야 했다. 삼선교역 5번 출구 앞 기울어진 건물에서 우표를 물에다 떼어 파는 노인이 있었다. 아들이 부탁한 일본 신동식물국보 사용제를 한 벌 사 가지고 가기 위해 우표를 골라 달라고 하였다. 값을 굉장히 비싸게 부르는 것 같았다.
좀 싸게 해줄 수 없습니까? 했더니,
종이쪼가리 몇 장 가지고 에누리 하겠소? 비싸서 못사겠거든 쏘주나 한잔 하고 가우.
대단히 무뚝뚝한 노인이었다. 더 값을 흥정하지도 못하고 잘 골라나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우표를 열심히 물에 담그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골라서 물에 불리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물을 이리 갈고 저리 갈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다 됐는데, 그제서야 물에서 건지고 있었다.
대충 말랐으니 그냥 달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사실 막차 시간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인제는 초조할 지경이었다.
빳빳하게 말리지 않아도 좋으니 그만 파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끓을 만큼 끓어야 밥이 되지, 생쌀이 재촉한다고 밥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살 사람이 좋다는데 무얼 더 말린다는 말이오? 노인장, 외고집이시구먼, 차 시간이 없다니까요.
노인은 퉁명스럽게.
다른 데 가 사우. 난 안 팔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다가 그냥 갈 수도 없고, 막차는 어차피 놓친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빳빳하게 말려 주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쭈글쭈글해진다니까. 우표란 제대로 떼어서 말려야지, 말리다 그만 두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말리던 우표를 숫제 다다미 위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도라지'를 입에 물고 라이터 불을 딩기고 있지 않은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필터까지 다 태운 뒤에야 우표를 핀셋으로 집어 이리저리 뒤집어 보더니 다 됐다고 내준다. 다 마르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우표들이다.
지하철 막차를 놓치고 택시로 집에 가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장사를 해 가지고 장사가 될 턱이 없다. 손님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러면서 값만 되게 부른다. 상도덕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인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보니 노인은 태연히 창문을 열고 혜화문 지붕 추녀를 바라보고 섰다. 그때, 그 바라보고 서 있던 옆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노인다워 보이고, 부드러운 눈매와 흰 구렛나룻에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인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감쇄된 셈이다.
집에 와서 우표를 내놨더니, 아들놈은 상태가 완벽하다고 야단이다. 다른데 파는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데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의 설명을 들어 보니, 우표가 덜 마른 채로 스토크북에 끼워 놓으면 쭈그러진 상태를 빳빳하게 되돌리는데 힘이 들며, 뒷풀이 완전하게 제거되지 않으면 장마철에 뒷면이 눌러 붙는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상태는 좀체로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노인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옛날부터 내려오는 감자풀이 발린 우표는 혹 힌지자국이 묻어 지저분해지면, 뒷면의 풀을 빼고 그늘에 빳빳하게 말려서 도배풀로 뒷면을 발랐다. 이렇게 하면 깔끔해지기도 하거니와, 좀체로 쥐새끼가 우표를 갉아 먹지 않는다. 그러나 요새 나오는 스티커식 우표는 뒷면 대지가 한번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다.
예전에는 우편물을 부칠 때, 우표를 천공이 망가지지 않게 살살 떼어서 혓바닥으로 뒷면을 적신 뒤에 봉투의 정확한 위치에 붙였다. 이렇게 한 뒤에 소인을 밀리지 않고 정성껏 찍어야 비로소 편지를 제대로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요새는 다기능스티커를 써서 소인은커녕 특수취급인도 따로 안 찍는다. 스티커로 뽑히니까 혀바닥도 필요 없다. 그러나 멋대가리가 없다. 그렇지만 요새 우체국에서조차 달가워하지도 않는 우표를 붙여 가며 편지를 부칠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사용제만 해도 그렇다. 옛날에는 사용제를 사면 상소(上消)는 얼마, 악소(惡消)는 얼마, 값으로 구별했고, 만월(滿月)이 찍힌 것은 열 배 이상 비쌌다. 만월이란 우표의 인면에 소인 전체가 또렷이 찍힌 것이다. 상태가 어쨌건 어차피 소인이 한 번 휘갈긴 우표이므로 민트보다 상품가치가 없다. 단지 취미 때문에 모으는 것이다. 헌데 지금은 롤러인에 밀려버린 것조차 없다. 각박해진 세상에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우표를 붙여서 정성껏 소인할 이도 없고, 또 그것을 알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를 기다려 줄 사람도 없다.
옛날 사람들은 시간은 생명이요, 주머니는 가벼웠지만 편지를 부치는 그 순간만은 오직 아름다운 마음을 전한다는 그것에만 열중했다. 그리고 스스로 보람을 느꼈다. 자기들도 모르게 성의를 다해 실체봉피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 우표들도 그런 심정에서 떼어냈을 것이다. 나는 그 노인에 대해서 죄를 지은 것 같은 괴로움을 느꼈다. 그 따위로 해서 무슨 장사를 해 먹는담.하던 말은 그런 노인이 나 같은 문외한에게 멸시와 증오를 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우표를 완벽한 상태로 떼어낼 수 있담.하는 말로 바뀌어졌다.
나는 그 노인을 찾아가서 씨레이션에 소주라도 대접하며 진심으로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다음 놀토날에 귀가하는 길로 그 노인을 찾았다. 그러나 그 노인이 앉았던 건물에 노인은 있지 아니했다. 나는 그 노인이 있었던 건물 입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허전하고 서운했다. 내 마음은 사과드릴 길이 없어 안타까웠다. 맞은편 혜화문의 지붕 추녀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창공에 날아갈 듯한 추녀 끝으로 흰 구름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 그때 그 노인이 저 구름을 보고 있었구나. 열심히 우표를 떼다가 우연히 추녀 끝의 구름을 바라보던 노인의 거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무심코 다기능철폐, EMS우표첩부라는 아들놈의 노랫말을 뇌까렸다.
오늘, 집에 들어갔더니 아들놈이 편지 박스를 뒤지고 있었다. 전에 아들놈이 수입인지를 떼러 땅문서를 뒤지다 나한테 두들겨 맞은 생각이 난다. 우편함에 진짜 편지를 구경한지도 참 오래다. 요새는 우편함에 우표를 뜯다 도망가는 초딩도 없다. 우표문화거리니, 중앙우체국5층 체성회우표코너같은 어린 수집가들의 순례장소도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문득 5년 전 우표를 떼던 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원작: 윤오영 作 '방망이 깎던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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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한국 우표, 세계서 가장 아름다운 우표로 선정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3&sid2=245&oid=079&aid=00019798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