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상의 이유로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는 경우 의사는 어떻게?
Q. 종교상의 이유로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는 경우에 의사는 강제적으로 수혈 할 수 있나요?
저는 H종합병원에 근무하는 의사입니다. 주로 수술환자에 대한 수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수술시 수혈이 꼭 필요한 환자가 있었는데, 종교상의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일이 있어 애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수혈이 생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이었기 때문에 수혈을 하지 않고도 생명을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수혈을 하지 않는 경우 생명을 직접적으로 위태롭게 하는데도 불구하고 환자가 수혈을 한사코 거절하는 때에는 어떻게 해야할 지 의사는 대단히 난처한 처지에 처하게 됩니다. 의사는 환자가 수혈을 거절하는 경우에 환자의 의사에 반하여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수혈을 강제적으로 할 수 있나요?
A. 종교상의 신조로 수혈을 하지 않으면 사망이 분명한 상황에서 환자가 수혈을 거부하는 경우에 의사가 독자적인 판단으로 수혈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1. 수혈거부
종교상의 이유로 치료에 필요한 수혈을 거부하는 사건은 미국에서 흔히 발생하고 있는 문제로서 미국에서는 큰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며 역시 국내에서도 가끔 수혈거부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수혈거부는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와 관련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교리상 수혈을 금지하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서에 기록된 계율을 엄격히 준수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수혈을 거부하는 이유로는 ① 환자의 자기 결정권, ② 수혈에 따른 부작용의 방지, ③ 수혈에 의하여 육체가 유지될 지라도 더 고차원의 존재인 정신이 침해된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의료행위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으며, 다만 치료방법에 해당하는 수혈을 거부하는 점에서 특수성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이 치료방법에 수혈을 금지하는 일정한 제한을 붙여서 의료행위를 신청한 경우에 만일 환자에게 긴급히 수혈을 실시하지 않으면 사망할 가능성이 강한 때에는 수혈을 거부한 환자의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는 심각한 입장에 직면하게 된다.
2. 법률상의 문제
의사가 환자의 수혈거부에도 불구하고 수혈을 강행한 경우는 종교의 자유 혹은 자기결정권의 침해가 문제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수혈을 하지 않아 환자가 사망한 경우는 형법상의 살인죄나 생명침해에 의한 불법행위가 성립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1) 환자가 성인인 경우
일반적으로 치료행위 자체가 아닌 치료방법의 거부도 자기결정권의 내용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방법의 거부가 종교상의 신념에 기초한 경우는 신앙내용의 시비를 의사가 판정할 수는 없다. 물론 신앙에 기초한 행위가 법적으로 위법하다면 종교상의 행위도 규제의 대상이 될 수 있고, 규제는 신앙의 자유에 대한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혈을 받지 않는 행위 자체를 법률에 저촉하는 위법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정상적 정신능력을 가진 성인환자의 진지한 수혈거부의 의사가 표명된 이상, 의사가 수혈을 강제할 수 없다. 성인에 대한 강제수혈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 혹은 자기결정권이라고 부르는 일종의 인격권의 침해에 해당될 수 있다.
다만, 미국에서는 환자 본인 혹은 부모가 여호와의 증인으로 신앙상의 이유에 의하여 수혈을 거부하는 경우에, 수혈이 환자의 이익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때에는 의사가 법원으로부터 후견인의 임명이나 수혈허가명령을 받아서 수혈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 환자가 의식불명인 상태에서 가족이 수혈거부를 한 경우
환자가 의식불명으로 판단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가족 등 근친자가 종교상의 이유로 수혈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신앙상의 계율을 지키고 안지키고는 극히 개인적이고, 특히 신앙상의 계율이 환자 본인의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는 환자 본인만이 일신전속적으로 그 결정권을 갖는다. 따라서 근친자가 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해석된다. 가족 등 근친자의 의견은 환자 본인의 의사를 추정하거나 확인하는 수단으로서만 효력을 인정할 수 있다.
3)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수혈거부는 특히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 문제가 된다. 환자가 미성년자인 경우는 영아나 유아와 같이 미성년자가 종교적 신념에 기초한 주체적 결정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판단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을 가지고 있는 미성년자도 있다.
의료행위에 대하여 주체적 결정을 할 수 있는 판단능력은 민법상의 법률행위능력과 달리 의료적 침습의 성질, 효과, 결과 및 위험을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능력을 의미한다고 본다. 영국에서는 의료행위에 관한 승낙에 대하여 16세 이상의 미성년자는 성인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미국에서는 성숙한 미성년자에게 자기의 판단에 의하여 임신중절수술을 받을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환자가 승낙능력이 없는 미성년자인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친권자인 부모가 승낙을 대행할 수 있다고 인정된다. 다만, 친권자의 대행권 혹은 미성년자인 자(子)에 대한 감독권이 부모에게 보장되는 무제한의 자유라고는 할 수 없다. 친권의 목적은 자의 복지를 지키기 위한 제도이므로 친권은 자의 최대한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법으로 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친권자인 부모가 자의 이익에 반하여 친권을 남용하는 경우는 친권상실의 선고를 할 수 있다(민법 924조).
만일 친권자가 종교상의 신조를 이유로 수혈을 하지 않으면 사망이 분명한 상황에서 미성년자인 자에 대한 수혈을 거부하는 행위는 친권의 명백한 남용에 해당된다고 평가된다. 왜냐하면 부모가 자를 순교자로 만드는 경우에까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미성년자인 자에 대한 수혈을 거부하는 친권자에 대하여 친권상실의 선고를 신청하고, 친권의 직무대행자로서 후견인을 선임하여 의사는 그 후견인의 승낙에 의하여 수혈을 할 수 있다.
부 또는 모가 친권을 남용하거나 현저한 비행 기타 친권을 행사시킬 수 없는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법원은 제777조의 규정에 의한 자의 친족 또는 검사의 청구에 의하여 그 친권의 상실을 선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