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궁금한 자녀의 연애편지, 뜯어 본 부모는 어떻게 될까?
Appendix/법률 이야기 Posted at 2008. 7. 11. 12:48
Q. 동거 중인 남편에게 배달된 편지를 몰래 뜯어보았습니다. 이것도 죄가 되나요?
A양은 내연의 남편인 B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던 중 B가 출근한 후 어떤 여인(C)으로부터 B에게 온 편지를 집배원에게서 받게 되었다. A는 이 편지를 받고 질투심에서 뜯어보고 말았다면 어떤 죄가 됩니까?
A. 사생활의 비밀이 부당하게 폭로 되었다면, 비밀침해죄가 성립합니다. 다만 부모의 경우에는...
사람은 누구나 사생활에 많든 적든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생활의 비밀이 부당하게 폭로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평화로운 생활을 하기 위한 조건이므로 따라서 비밀침해죄는 인간의 사생활상의 비밀을 부당하게 폭로하는 것과 같은 행위를 처벌하려는데 그 취지가 있다.
비밀침해죄란 봉함 기타 비밀장치한 사람의 신서, 문서 또는 도서를 열어봄으로써 성립한다. 신서(信書)란 특정인이 다른 특정인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문서를 말하는 것으로 소포는 신서에 포함되지 않으며, 신서는 반드시 우편물이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부치지 않고 그냥 써 놓은 편지라도 이에 해당된다.
신서를 봉투에 넣어 풀로 붙였을 때에는 '봉함한 신서'가 되지만 이 봉함을 뜯고 신서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상태로 만드는 것이 '개피'인데, 이 때 봉한 부분을 뜯지 않고 김을 쏘인다든지 물을 묻힌다든지 해서 여는 것도 개피에 해당한다. 그러나 봉서를 전등이나 일광 등을 이용해서 비춰본 것 정도는 개피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죄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신서개피죄(信書開披罪)는 봉함을 뜯으면 기수가 되므로 행위자가 신서내용을 알고 모르고는 이 죄의 성부와 관계가 없다. 피해자인 발신인 또는 수신인의 추정적 동의가 있는 경우에 그 위법성은 조각되고, 이 죄는 친고죄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소가 없으면 처벌되지 않으나 누가 고소권을 가진 피해자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뉘어져 있다. 통설은 신서의 발신인은 언제나 고소권을 갖고 있으며 신서의 도착 후에는 수신인도 고소권을 갖게 된다고 하는 것이므로, 질문에서는 신서를 개봉한 죄에 해당되기는 하지만 B와 C가 고소를 하지 않으면 처벌되지 않게 된다.
법률이 보호하고 있는 신서의 비밀은 보통의 편지에 국한하지 않고, 어떤 사람으로부터 자기에게 전달되는 의사, 감정의 표시, 보고는 물론 사회적으로 별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 쪽지도 포함된다. 또한 자필에 한하지 않고 인쇄물이라도 상관이 없다. 그리고 사진 자체는 신서라고 볼 수 없으나 사진도 봉투에 넣어 밀봉된 것은 역시 이 죄의 대상이 된다. 극단적인 경우로는 백지 한 장이 들어 있는 봉투라도 어떤 사람 앞으로 전달되는 봉서(封書)라면 역이 이 죄의 대상이 된다.
문제되는 것은 자녀의 연애편지를 부모가 뜯어보았을 때에 죄가 되는가이다. 친권자는 미성년자인 자녀의 감호, 교육의 권리와 의무가 있기 때문에 이성으로부터 온 편지를 뜯어보는 것은 정당한 친권의 행사로 볼 수 있으나, 성년인 자녀 또는 아직 미성년자라도 대학생 등으로서 이미 사회적으로 한 사람의 성인으로 대우 받는 위치를 점하게 된 때에는 부모라 하더라도 함부로 신서를 뜯어보면 친권의 남용이 될 것이므로 이론상 위법행위로 볼 수 있다.
다만 신서개피죄는 개인의 법익을 보호하는 죄로서 친고죄이기 때문에 실제 자녀가 부모를 고소하는 일은 없으며, 또 자기의 직계존속은 고소를 하지 못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문제되는 일은 없을 것이나 성인이 된 자녀의 편지까지 들추어 보는 것은 어려운 법률용어인 친권남용 등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한도를 넘어선 것으로 알 수 있다.
자녀의 사생활은 당연히 부모가 보호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임 - 사례
나는 신병들이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신병교육대대에서 군 복무를 했었다. 가입소 기간이 지나면 입소 1주차 평일 저녁이나 주말 즈음에 가족에게든 여자친구에게든 친구에게든 아무튼 '첫 편지'를 쓰게 된다. 물론, 가입소 기간이 끝나고 나서 입소 당시 입었던 사복과 휴대 물품들을 '장정소포'라는 박스에 싸서 집으로 부치게 되는데 대부분 박스 안 쪽에다가 몰래 편지를 적곤 한다.
어쨌든, 훈련소에서는 다양한 훈련병들이 있고 또 그 다양한 훈련병들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있기에 보내는 편지들은 군사우편의 형태로 밋밋할 지 몰라도 도착하는 편지들은 각양각색이다. 향수를 뿌려서 향기가 나는 것은 물론이요, 봉투를 직접 제작하거나 비에 젖지 않도록 투명비닐로 씌운다거나, 혹은 서류봉투만한 큰 편지를 보낸다거나 그렇다. 겉모습도 각양각색이지만 내용물은 더 한다. 우정이 돈독한 친구는 '소중한 담배 몇 개피'를 보내지만 결국 내게서 모두 걸러지게 되고, 어찌 알았는 지 행군할 때 뒤꿈치 상하지 말라고 자신의 '생리대'를 넣어 보내는 여자친구도 있다. (생리대는 회의 후 훈련병을 불러서 그냥 주었다. 압수를 하기도 뭐하고...난감했다.) 그리고 특히 많은 것은 '사진'이다.
한 기간병이 있었다. 편지를 수발하는 본부중대에서 근무하는 병사였다. 본부중대에서 사단 우체국에 올라가 대대 전체의 편지를 가지고 오면 본부중대의 편지수발함에 각 중대별로 나누어 넣어 두면 각 중대에서 편지를 가져가게 된다. 그런데 문제의 이 기간병이 못된 마음을 먹고 훈련병들의 편지에 손을 댔다. 대개는 여자친구들이 보낸 자신의 사진 및 연락처를 노린 행위로 밝혀졌다.
편지를 보냈는데 왜 훈련병이 받지 못하냐는 문의가 많았었는데, 실제로는 워낙 많은 편지가 도달하기 때문에 사단우체국에서 분류하다가 다른 대대로 분류를 하는 실수가 자주 일어나기도 하고, 본부중대에서 각 중대로 분류 할 때 다른 중대로 가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후자의 경우는 서로 잘못 온 편지가 있으면 각 중대로 다시 전달을 해주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지만 다른 대대로 내려가버리면 찾을 길이 없는 것이다. 그 쪽에서 반송해 주지 않는 한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적인 문제 외에도 그 문제의 기간병의 역할이 컸던 것도 사실이다.
군대에서 쏟아져 나오는 대외비 문건을 분쇄하기 위한 문서분쇄기에 집어 넣은 것도 수 십 통이고, 보직이 시설관리를 맡고 있는 녀석이라 그랬는지 대대 전체를 통과하는 하수구에다 버린 것도 수 백 통이었다. 하수구에 넣은 것은 나중에 전부 다시 주워서 증거물로 사용하려고 오수에 젖은 편지들을 말리느라 냄새가 진동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이 녀석은 헌병대의 조사를 받은 뒤 헌병대로 소속이 넘어 갔고, 결국 육군교도소에 수감되게 되었다. 얼마 간의 형을 살고 왔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내가 전역하기 전에 다시 돌아왔으니 그리 길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육군교도소를 다녀온 그 녀석은 사람이 완전히 변해 있었다.
남의 편지, 아무리 궁금해도 내 것이 아닌 이상 뜯어보지 말라. 편지를 보낸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허락'이 있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덧붙임 - 오해의 소지 차단
훈련병들의 편지내용 검열과 관련하여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밝힌다. 편지를 뜯어보고 안에 담배가 있는지 생리대가 있는지를 밝혀낸 것이 아니라, 편지 겉봉투를 손으로 만져보고 종이 외의 질감이 느껴지면 훈련병을 불러다가 확인을 시킨다. 직접 뜯어보지 않고 훈련병이 있는 상태에서 뜯어보거나 직접 뜯으라고 편지를 건네준다. 그러한 과정에서 일회용 팩이나 로션, 립글로즈, 비타민C, 사탕, 초콜릿, 껌 등 굉장히 다양한 물건들이 나왔다. 다만, 먹는 것의 경우 양이 적을 경우에는 그자리에서 먹도록 하였고 껌처럼 돌려주기 부적당한 것은 압수하여 보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혹여나 압수해서 조교들이 혹은 간부들이 가져간다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아무튼 말로만 듣던 과거의 군대가 아니라는 점, 훈련병들의 인권이나 사생활 등을 최대한 배려한다는 점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타 사단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본다.